자경전 일원
흥선대원군이 선물한 대비전
헌종(24대)의 어머니인 신정왕후 조씨는 고종(26대)의 즉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신정왕후의 거처를 궐 안에서 가장 화려하고 세심하게 만들어 은혜에 보답했다.
'자경'이란 이름은 정조가 즉위하면서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에 자경당을 지은 데서 비롯되었다.
그 의미는 왕이 어머니나 할머니 등 왕실의 안어른께 경사가 있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두 차례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88년에 재건하여 경복궁 침전의 전각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옛 건물이다.
자경전은 보물 제809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경전 일원은 남향인 자경전을 중심으로 서북쪽에 복안당을, 동쪽에 청연루와 협경당을 연결한 복합 건물군이다.
복안당에는 온돌을 들여 겨울용 침전으로, 청연루에는 누마루를 설치해 여름용 거실로 삼았다.
서쪽 담에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문양들과 갖가지 꽃나무들을 새겨 넣어 최고의 감상용 꽃담을 만들었다.
또한 뒤편 담장에는 대비의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 굴뚝을 설치했다.
십장생 무늬 굴뚝(보물 제810호)
자경전에는 온돌방을 많이 마련했는데, 각 방들과 연결된 10개의 연기 길을 모아 북쪽 담장에 하나의 큰 굴뚝을 만들었다.
땅 밑으로 난 연기 길은 담장과 그 앞으로 한 겹 내밀어 쌓은 벽 사이로 이어져 있다.
굴뚝 벽면 중앙에 십장생들을 묘사하고, 위 아래로는 학과 불가사리, 벽사상 등을 배치하여 악귀를 막고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굴뚝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조형미가 빼어나 조선시대 궁궐 굴뚝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종을 즉위시킨 신정왕후의 힘
신정왕후 조씨는 남편 효명세자가 22세에 요절하고 아들 헌종이 즉위하여 대비가 되었다.
헌종이 후사 없이 일찍 죽자 안동 김씨 세력은 철종을 즉위시켜 신전왕후의 힘을 약화시켰다.
안동 김씨의 서슬에 눌려 왕권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던 철종은 33세의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인조의 8대 손이었던 흥선대원군은 아버지 남연군이 사도세자의 아들인 은신군의 양자로 들어감으로써 영조의 혈통을 잇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신정왕후는 철종이 후사 없이 승자하자 흥성군의 차남을 양자로 삼고 고종으로 즉위시켰다.
이때 고종의 나이가 12세여서 10년간 수렴 청정을 하며 정국을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