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과 조선풍의 조화
1876년 경복궁에 큰 불이 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이어했다가 1885년에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와 주로 건청궁에서 생활했다.
1891년에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던 집옥재와 협길당등을 건청궁 서편으로 옮겨 와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했다.
집옥재는 양옆 벽을 벽돌로 쌓아 만든 청나라풍 건물로, 밖에서 보면 단층으로 보이나 내부는 중2층으로 되어 있다.
팔우정은 팔각 누각으로 기둥 상부에 청나라풍의 화려한 낙양각을 달았다.
반면 협길당은 고유한 조선식 건물로 온돌방을 두어 휴식 장소로 사용했다.
세 건물은 복도를 통해 연결되며, 각각의 특색을 지니면서도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청풍 건축
1880년까지는 청나라가 거의 유일한 선진 문물 수입 창구였다.
이 영향으로 집옥재와 팔우정을 비롯해 창덕궁 연견당의 선향재,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도 청나라풍으로 지어졌다.
화려한 장식과 입체적인 공간, 벽돌과 같은 새로운 재료 사용 등이 청풍 건축의 매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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